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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에는 프리다 칼로가 살던 '푸른집'이 있는 코요아칸에 갔습니다. 코요아칸은 멕시코씨티의 남쪽에 있는 작고 조용한 동네예요. 제가 묵은 호텔은 소칼로 광장이 근처에 있는, 멕시코씨티의 중심지 센뜨로 히스또리꼬에 있었는데, 거기 있는 지하철역 '이달고역'부터 코요아칸까지 지하철만 30분걸리고 역에서 '푸른집'까지는 꽤 걷습니다. 2,30분쯤?
사실 칼로가 살던 집보다는..그냥 그녀의 작품들이 보고 싶었어요. 전날 저녁 만찬에서 만난 프리다 칼로를 좋아하는 한 교수에게 물어봤는데..프리다 칼로의 작품의 정수를 보려면 어딜 가야겠느냐 물었는데, 칼로를 좋아한다면 무엇보다도 반드시 '푸른집'을 가라고 하더군요. 그 외에도 '돌로레스 올메도 뮤지엄'이나 '모던 아트 뮤지엄'에 칼로와 그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서, 내심 돌로레스 올메도로 가야하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 교수의 강력추천때문에 '푸른집'으로 갔습니다만...역시 돌로레스 올메도로 갈 껄 그랬나봐요, 암튼, 이번엔 호텔 입구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멕시코에는 세 레벨의 택시가 있어요. 빨강, 초록, 노랑 택시가 있습니다. 빨강이 차도 제일 후지고 가격도 제일 쌉니다만 위험하다고 타지 말라고, 적어도 초록색 택시를 타야한다고 합니다. 노랑 택시는 공항에서 구간별로 티켓을 끊어 미리 요금을 낸 후에 탈 때만 타봤습니다만, 확실한 라이센스 택시라서 안전하기는 하지만 역시 편하지 않고 멀미도 나고 영어도 잘 안 통합니다. 코요아칸으로 가려고 호텔 입구에서 초록 택시를 잡으려고 했는데 호텔 도어맨이 빵긋 웃으며 택시 잡아드릴까요 그러잖겠어요? 그래달라 했더니 호텔 입구에 대기중인 리무진에 태웁니다. 뭔 차인지는 모르겠는데 링컨 컨티넨탈같은 묵직하고 승차감 좋은 차였는데 전혀 택시처럼 안 보이긴 했는데, 뭐 택시라니까 타긴 탔는데..아이구...열받어라..도어맨이 잡아주는거 타지 마십쇼. ㅠ.ㅠ 열라 비쌉니다. 코요아칸까지 한 10,15분 정도 걸렸는데 편도 2만원이나 냈습니다. 제기랄. 암튼 이것이 '푸른집' 외관입니다. ![]() ![]() 들어가서 첫 방에는 칼로의 자화상, 가족 초상, 정물화 같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초기 작품도 있고 죽기 얼마전에 그린 것들도 섞여 있습니다. 아래는 그 방에 전시되어있던 'Viva la vida 삶이여 만세!' 입니다. 이게 왜 '삶이여 만세!' 일까..수박의 저 뻘건 과육처럼 인생은 피투성이이고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수박처럼 달콤하다는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는지..말그대로 피를 철철 흘리는 삶을 살고도 그것이 달콤할 수 있다니, '삶이여 만세!' 라니..이렇게 강렬한 생명력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까싶어 감정이 울컥 하더군요. 잘려진 수박덩이를 보고도 삶의 고통을, 환희를 생각하다니..그것이 예술가의 시선일까요. 다음 방에는 칼로가 즐겨 입던 민속의상들과 머리장식과 유명한 이 그림이 한쪽 벽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 전시되어있던 물건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 하나는 그녀의 약들이예요. 콘솔처럼 생긴 서랍장이 약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그 엄청난 종류와 양의 약들을 보니 그것들에 평생 쪌여있었을 그 나약한 육체가 얼마나 저주스러웠을지..그 고통의 일부분을 살짝 들여다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약 옆에는 대여섯개의 코르셋, 부서진 척추를 지탱하던 여러 종류의 코르셋들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말년에도 유머를 잊지 않던 칼로는 코르셋에 공산당 표시를 그려놓고 침대에 누워 리베라와 키스하는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 코르셋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부엌에는 민속적인 식기들이 많았습니다. 알록달록하게 채색되고 투박하게 구워진 토속적인 식기들을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었어요. 그리고 끝에 그녀가 말년을 보낸 방이 있습니다. 내내 누워지내던, 허리 부분이 푸욱 꺼져 휘어져버린 매트가 깔린 침대가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그녀의 작업실이 있습니다. 이젤 앞에서 상체를 꼿꼿이 세울 수 있도록 잡아주는 코르셋 달린 의자같은게 있었는데, 그런 창살에 의지해서도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말라붙은 물감과 오일 붓들이 널려 있습니다. 작업실의 한쪽 벽면은 쭈욱 서가가 놓여있는데 책들은 대부분 멕시코 독립운동가들의 전기들입니다. 멕시코 민속예술에 대한 책들, 그리고 인상파 화집이 많습니다. 세잔, 모네,고흐..리베라의 화집도. 2층의 다른 방에는 처녀시절에 쓰던 물건들이 옮겨져 있습니다. 인생을 뒤흔들어놓은 전차 사고가 났던 당시 투병하던 작은 싱글 침대가 있고 그 침대 천정에 큰 거울이 붙어 있습니다. 침대 옆 길쭉한 서가에 꽂힌 책들은 사회주의 혁명가들에 관한 책입니다. 그 방에 이 사진이 있었습니다. 칼로를 사랑하던 사진작가 니콜라 머레이가 찍은 것입니다. 리베라의 끊임 없는 외도로 고통받다가 이혼하고 나서 파리에서 머레이와 함께 머무르던 시절에 찍은 것인데, 한 남자의 충실한 사랑을 받으며 정서적으로 안정되어있는 표정이 나타나, 부드럽고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사진입니다.코요아칸에 있는 프리다 칼로 뮤지엄은 칼로라는 '사람'을 느끼고 싶다면 분명히 가봐야 할 곳입니다만, 전시된 작품 수도 많지 않고 대표작도 거의 없습니다. 중요한 작품들은 거의 '돌로레스 올메도 뮤지엄'에 가 있는 모양입니다. 에휴.. 1층 전시관에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초상화가 몇 개 있었어요. 사실 전 리베라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거대한 벽화에서 물씬 풍기는 공산주의 이념 따위는 별로 보고싶지도 않았었죠. 르 끌레지오가 쓴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에서 리베라가 그린 몇 개의 여성 초상화를 보았었는데, 그것은 칼로의 것과는 무척 틀렸습니다. 칼로의 초상화들에서는 모두 인물이 정면을 쏘아보며 그 눈빛이 그 사람을 다 말하는 듯 했는데, 그에 비하면 리베라의 것은 무척 부드럽고 몽환적으로 미화된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여체에 관심이 많고 여성의 미에 마음을 홀딱 뺏겨버린 남자라는 것이 느껴지는 초상화들이랄까요. 그것이 그리 호감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칼로 뮤지엄에서 몇 개의 리베라가 그린 초상화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리베라의 작품은 실제로 보니 의외로..제 마음 속 무언가를 건드리는 듯 인상적이었어요. 칼로의 것은 몹시 현실적인 그림이었지만 리베라의 것은 이 세상에서 떠나 있는 듯, 이상적인 그 무엇이었는데, 비현실적으로 둥둥 구름 속을 떠다니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얼굴들은 그냥 이쁘게 꾸민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칼로의 초상화는 구질구질한 현실 속에서 지쳐 있고, 분노하고, 멍해져 있는 삶 그 자체의 모습이었지만, 리베라의 작품 속에서 여성들은 그런 발 밑의 구질구질한 것들을 모두 차 내어 버리고 본인이 가고싶어하는 곳으로 멀리 떠나 본인이 되찾고 싶은 가장 아름답고 평화롭고 자신감있는 본연의 자아에 충실해져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것은 그냥 허구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현실의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지만 각자의 내면에 숨겨진 빛나는 보석들이 전면으로 끄집어내져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들의 본질일지도 모르죠. 두 세개의 초상화를 보고 단번에 디에고 리베라에게 호감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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